아동은 신체적 발달뿐 아니라 지적 기능, 정서, 성격 구조와 같은 모든 심리적인 측면이 발달하고 성숙해 가는 '과정 있는 존재이다. 그 때문에 아동이 그리는 그림에도 이러한 발달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으며, 이를 함께 고려하지 않으면 아동이 그림을 통해 드러내는 특성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아동 그림 검사의 해석에서는 성인의 그림 검사와는 달리 이러한 발달적 측면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아동은 표상 능력이 발달해 가는 초기 단계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보는 것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못하고 내면화되어 있는 그 대상의 형상에 따라서 그릴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매우 단순하고 도식화된 형태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루케는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시각적 현실주의'라고 하였으며, 반대로 아동들이 내면의 도식에 의해서 그림을 그리게 된다. 루케는 보이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리는 것을 '시각적 현실주의'라고 하였으며, 반대로 아동들이 내면의 도식에 의해서 그림을 그렉 되는 것을 '지적 현실주의'라고 명명하였다. 파울 클레와 같은 화가는 자신이 '보는 것'이 아니라 '알고 있는 것'을 그려내는 아동의 능력을 되살려 냄으로써, 성인들에게 잊혀진 '이지적 현실'을 표현해 낸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
피아제는 아동이 지적현실에서 시작해서 시각적 현실로 이행해 가는 것은 그림 등의 예술적 표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린 아동의 모든 정신과정에서 나타나는 전반적 특성이라고 보았다. 피오트로스키도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의 현실을 그려내기 때문에 아동의 그림은 정서적 요인에 영향을 받아 과장되는 경우가 많다고 하였다. 울프 또한 아동의 그림은 아동 자신의 내적 현실과 관련되며 정서적 요인이 아동의 개념 형성과 그림 표현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리드도 역시 아동의 그림은 시각적 관찰의 결과라기보다는 심리적 인상의 산물이며 이러한 표상에는 지적 요인뿐 아니라 정서적 요인들이 스며들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아동에게는 시각적 대상이 단서나 촉매 역할을 할 뿐이고, 실제 대상을 보고 그리든 아니면 기억으로부터 끌어내어 그림을 그리든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여러 연구자와 이론가들이 일관되게 루케의 지적 현실주의와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발달적 특성, 즉 일반 아동들이 발달과정에 따라 어떻게 그림을 그리는가를 알고 있어야, 임상 실제에서 각 아동이 그린 그림이 정상에서 얼마나 벗어난 것이며, 어떤 부적응적인 측면을 나타내는 것인지를 파악할 수 있다. 따라서 아동의 연령 수준을 고려했을 때 각 그림이 정상적인 미성숙 정도를 반영하는 것인지 아니면 발달 지체나 심리적 어려움을 반영하는 것인지를 분별해 내기 위해서 정상 아동 그림의 발달적 특성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번 장에서는 발달 단계별로 정상 아동 그림의 특성이 어떠한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1단계: 무질서한 낙서 시기
약 18개월에서 3세에 이르는 시기가 이에 해당되는데, 이 무렵이 되면 아이는 종이나 벽, 책 등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기 시작한다. 피아제의 인지발달 단계상 감각운동기의 후반부에서 전조작기 초반부에 해당되는데, 이때부터 자신이 어떤 동작을 한 결과 생겨나는 신체 내적 정보를 파악하고 사고할 수 있게 된다. 즉, 운동 감각적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데, 예를 들어 '내가 손을 이렇게 아래위로 움직였더니 이런 선이 생겼다'라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이다. 또한 시각 운동 협응력이 향상되기 시작하고, 걸음마를 할 뿐 아니라 뛰어다니기 시작하며, 점차 목표 지향적이고 의도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고 말을 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단계 후반부가 되면 상징적 사고가 시작되고 언어발달이 가속화되며, 주변 환경에서 본 것들을 형태나 색채, 크기를 기준으로 분류할 수 있게 된다.
18개월~2세 정도 시기에는 그저 손이 움직이는 대로 아무런 질서가 없는 낙서를 하는 정도이지만, 점차 '아, 내가 움직임으로써 뭔가 자국이 나는구나, 무언가가 그려지는구나'하는 사실을 인식하게 되면서 손의 움직임을 통제하기 시작하고, 그림 그리기를 즐기게 된다. 어른의 입장에서 보기에는 낙서 그림이 아무런 의미가 없겠지만, 유아가 종이에 아무렇게나 낙서를 하는 것은 언어와 몸짓을 통해 자기를 표현하는 능력이 한창 발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 시기의 낙서도 유아가 종이 위의 선고 형태를 통해 주변 환경의 사물들을 표상하고자 하는, '개념'에 대한 자각이 초보적인 형태로 표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2. 2단계: 기본적인 사물의 형태가 갖추어지는 시기
3~4세 무렵이 되면 그림이 여전히 낙서 수준이기는 해도 어느 정도의 형태가 갖추어지기 시작하며, 이것이 무슨 그림인지, 무엇을 그린 것인지, 어떤 내용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아동 스스로 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는 피아제의 분류상 전조작기 초기, 특히 2~4세에 이르는 전개념기에 해당하는데, 이때 아동은 자기중심적인 사고, 사건의 인간관계에 대해 주관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한다. 또한 언어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상징적 사고가 확연해지며, 형태나 색깔, 크기를 통해 자기 자신과 세상을 더욱 잘 분류할 수 있게 된다.
이 시기의 그림도 어른이 보기에는 여전히 그 의미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기본적인 사물의 형태가 나타나고 자신의 그림에 대해서 아동 스스로 적극적으로 설명하고 싶어 한다. 아동이 자신의 그림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는가는 그림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므로, 아동의 설명을 귀담아듣는 것도 중요하다.
3.3단계: 사람을 그릴 수 있고 내적 도식이 형성되는 시기
4~6세경에 이르면 아동은 초보적인 형태의 사람을 그리기 시작하고, 그림에 색깔을 사용하게 된다.
이 시기는 피아제의 분류상 전조작기의 후반부로, 상징적 사고가 더욱 증가하고 분류 능력, 관계 파악 능력, 수개념 및 수리 능력, 공간개념 등이 생겨나는 시기이다. 때문에 아동은 자기 자신, 자기 신체와의 관계성 속에서 공간을 개념화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주변 환경에 대한 아동의 지각은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예를 들어, 유리컵이 떨어져서 깨지면 아동은 자신의 감정과 유리컵의 감정을 혼동하여 유리컵이 아파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이 시기 그림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전술한 바와 같이 초보적인 형태의 사람을 그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마치 올챙이 모양처럼 투박한 수준으로, 동그라미를 하나 그려서 머리와 몸통을 나타내고, 그 밑에 선을 두 개 그어 다리라고 하고 옆쪽에 선을 두 개 그어 팔이라고 하는 정도이다. 이때는 누구를 그리든 다 이러한 형태로 비슷하게 그린다. 안하임은 아동에게는 회화적 어휘가 너무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형상을 단순한 기하학적 형태로 나타낼 수밖에 없으며, 사람 그림 또한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단계의 후반부인 6세경에 이르면 사람의 신체 부위를 점차 분화시켜서 그리기 시작한다. 즉, 머리와 몸통을 따로 나누어 두 개의 원으로 그리고, 발가락인 손가락, 이, 눈썹, 머리카락, 귀와 같은 부분들을 그려넣을 수 있게 된다.
그뿐 아니라 아동은 이 시기에 집, 태양, 꽃, 나무들과 같이 주변 환경에서 쉽게 접하는 사물들에 대한 내적 도식을 발전시키게 되고, 이에 따라 초보적인 수준의 그림을 그리 수 있게 된다. 이 단계가 지나면 아동은 그러한 도식을 토대로, 외부 사물의 구체적인 사실적 특성에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고, 단순한 그림에서 벗어나 보다 사실적이고 복잡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된다.
또한 이 단계부터는 색깔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 시기 아동은 색깔 자체보다는 모양을 그리는 데 더 큰 관심을 두는 경향이 있다. 색깔도 사물에 맞게 택하는 것이 아니라 주관적으로 선택하는 수준이므로, 그 색깔이 아동에게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상 아동의 경우, 이 시기의 색깔 선택은 매우 자유롭고 독창적이어서, 자줏빛 태양이나 파란 소 등과 같이 어떠한 것도 자연스럽게 그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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